이제 둘

끄적 2014. 7. 21. 22:12

저기 너 말이야 나와 함께 있지 않을래내가 너와 안 맞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제 더 이상 혼자는 싫어나와 함께 지내자.’

이런 소리가 빛과 함께 들려오지만 전 거기에 응이라고 답할 수 없습니다.

왜냐하면 그 빛이 오는 곳은 너무 먼 곳이라 갈수 없거든요.

언제부터일까요 저곳에서는 소녀의 목소리가 담긴 빛이 오기 시작했습니다분명 예전에는 그저 빛만 왔는데 나와 함께 지내자 같은 말은 하지 않았는데.

분명 저 소녀는 외로운 것이겠죠하지만 전 그 소녀에게 갈수 없습니다.

소녀도 저에게 올수 없습니다그저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일밖에 할 수 없는 우리의 처지가 괴롭지만 우리는 죽을 수도 없습니다빛을 전달하기 위해 태어났고 혼자여야만 하는 사람들 그래서 외로움이라는 걸 전혀 몰라야 하는 우리들인데 소녀와 저는 그 외로움을 알아버렸습니다.

사실 전 외로움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어요저 말고 다른 사람이 있는 줄도 몰랐죠그러던 어느 날 저 멀리에서 오는 빛은 나처럼 다른 누가 보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.

아 난 혼자가 아니구나나와 같은 사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닫자 저는 외로워지기 시작했어요.

소녀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제가 외로움을 느낄 때쯤 소녀가 보내는 빛에서 목소리가 담겨서 왔거든요.

하지만 이 목소리는 저만 들을 수 있나봐요아무도 소녀의 목소리에 답을 해주지 않았죠전 답해주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어요왜일까요왜 소녀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난 그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외로움을 달랠 수 없는 것일까요.

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소녀의 빛과 함께 오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기 시작했어요소녀도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지친 거겠죠.

나는 너무나 슬펐어요슬프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빛을 보내는 일도 계속해야 했죠.

그래서 더 슬펐어요나는 왜 여기 혼자 있고 이렇게 빛을 보내야 하지왜 저기 사람이 있는걸 알면서 가지 못하는 거지소녀가 외롭다고 하고 있는데 난 그걸 들을 수 있는데 왜 대답을 하지 못하는 거지?

이런 생각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다녔고 전 그런 생각들을 할 때마다 더 외로워졌어요혼자가 싫었고 누군가 함께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죠.

이러한 사실들이 너무도 괴로워서 죽고 싶었어요하지만 죽을 수 없었죠그렇게 태어났으니까요

그렇게 매일매일을 보내야 하니까요차라리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으면 좋았을걸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걸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나 자신을 원망한지 얼마나 지났을까요다시 소녀의 목소리가 빛과 함께 제게 왔어요.

'정말 아무도 없는 거야여긴 나 혼자뿐인 거야?'

대답하고 싶었지만 전 대답할 수 없었어요그저 빛만 소녀에게 보낼 뿐이었죠그렇게 소녀의 목소리는 사라졌고 이제는 빛만이 저에게 왔어요차라리 소녀에게는 잘 된 것일지도 몰라.

원래부터 혼자였다고 생각하면 외로움이 사라질 테니까 응 분명 그럴 거야 소녀에게는 그게 더 나은 거고 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은 소녀를 위한 거라고 생각했죠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도 제 자신의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았어요.

전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알게 되어버렸으니까요소녀는 알고는 있지만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지만 전 저 자신을 속일 수 없으니까요.

소녀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없던 것처럼 취급할 수 있지만 전 할 수 없었으니까요.

사실 소녀가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없던 것처럼 취급할 수 있다는 건 저 자신만의 생각이긴 하지만 제가 소녀보다 더 괴롭다는 사실은 확실했어요.

그렇게 외롭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저는 날이 갈수록 수척해져 갔고 늙어갔어요원래 같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죠그렇게 계속해서 늙어가고 이제 빛을 보내는 일이 힘들어질 즈음이었어요소녀가 보내던 빛이 사라졌어요.

소녀도 나처럼 외로움에 몸부림치다 늙어가는 걸까요왜 빛이 오지 않는 건지 고민해봤지만 전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없었고 결국 생각하는 걸 포기해버렸어요하지만 소녀에게 보내던 빛을 보내는 걸 그만두지는 않았어요.

원래 제 일이기도 했고 어쩐지 그만두면 안 될 것 같았기에 몸이 힘들지만 매일매일 빛을 보냈죠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요이제 정말 빛을 보내러 가는 게 힘들어 아예 빛을 보내는 곳에서 자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 제 별에 왔어요.

그리고 그 누군가는 소녀였죠얼굴을 한 번도 본적이 없지만 소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이 소녀가 나에게 목소리를 보내던 소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.

그리고 소녀는 나에게 다가왔죠나는 숨고 싶었어요나 혼자 늙어버렸으니까요.

하지만 늙은 몸을 움직이는 건 힘들었고 숨기도 전에 소녀가 나에게 왔어요.

소녀는 늙어버린 내 모습을 보고 잠시 놀란듯했지만 나에게 다가와서 내 손을 잡고는 말했어요.

역시 난 혼자가 아니었어.”

그래요 소녀는 포기하지 않고 저에게 온 거였어요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요하지만 전 소녀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포기하고 계속 외로워하며 혼자 살아갔죠그래서 전 늙어갔지만 소녀는 조금도 늙지 않았어요.

소녀는 내 손을 계속 잡으며 물었어요.

내가 보낸 목소리 듣지 못한 거야왜 있으면서 답하지 않았어?”

난 대답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어요.

말하기 싫어넌 혼자가 좋아?”

저는 바로 고개를 저었어요.

말 못해?”

저는 고개를 끄덕였어요.

소녀는 그제야 제 손을 놓고는 말했어요.

이제 나와 함께 살자!”

나는 늙고 병들었는데도 소녀는 나와 함께 살자고 말했어요.

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기쁜 것 같았어요.

저도 그 사실이 정말 기뻤어요이제 혼자 지내지 않아도 되는구나이제 외로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구나하고요그러다 내가 이렇게 늙었는데 만약 죽어버리면 소녀는 다시 외로워지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.

사실 원래 같으면 죽을 일은 없지만 전 이렇게 늙어버렸으니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.

그리고 전 그건 소녀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죠.

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제가 다시 소년이 되어버렸거든요.

그렇게 저와 소녀는 함께 빛을 보내고 이야기를 나누고-비록 소녀 혼자 말 하고 전 거기에 끄덕이거나 고개를 젓는 정도의 움직임으로밖에 의사표현을 못하지만아직까지 행복하게 지내고 있답니다.

[출처] 혼자가 아냐|작성자 혀느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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