오늘도 또 토도가 담배를 피웠다. 내가 점심을 먹고 자전거 연습을 하러 나올 때였다. 언덕길을 올라서려니까 등뒤에서 메스꺼운 담배 냄새가 야단이다. 짜증이 나서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토도가 또 담배를 피는것이다. 

토도 이 놈은 언제나 이랬다. 꼭 내가 연습을 할려 하면 어느샌가 내 뒤에 와서는 담배를 뻑뻑 피는것이다.

분명 내 옷을 태우려는 것이 틀림없을것이다. 이 놈은 요새로 접어들어서 왜 나를 자꾸 괴롭히는지 모른다.

나흘 전 대회때만 하더라도 나는 저에게 조금도 잘못한 것은 없다. 이 놈이 대회전에 몸을 풀면 풀었지 남이 몸 푸는데 와서 방해를 하는 것은 다 뭐냐? 

그것도 발소리를 죽여 가지고 등 뒤로 살며시 와서는,

"얘 너 혼자 몸 푸니?"

하고 긴치 않은 수작을 하는 것이다. 

저번 대회까지도 저와 나는 이야기도 잘 않고 서로 만나도 본 척 만척하고 이렇게 잘 지내던 터이련만 이번들어 갑자기 대견해졌음은 웬일인가. 

혼자 자전거도 잘 타는 놈이 남 연습하는 놈보고…….

"그럼 혼자 하지 우르르 모여서 하니?"

내가 이렇게 대답 하니까,

"너 연습하기 좋니?"

또는,

"남들이랑 같이 하지,왜 혼자 하니?"

잔소리를 두루 늘어놓다가 남이 들을까 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그 속에서 깔깔댄다. 별로 우스울 것도 없는데 날씨가 풀리더니 이 놈이 미쳤나 하고 의심하였다.

게다가 조금 뒤에는 저의 집께를 힐끔힐끔 돌아보더니 자기가 들고 있던 가방에 손을 쑥 넣은뒤 뽑아서 나의 턱 밑으로 불쑥 내미는 것이다. 언제 얼음에 넣어뒀는지 아직도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는 물통이 손에 뿌듯이 쥐었다.

"이렇게 시원한 물 느 집엔 없지."

하고, 생색 있는 큰소리를 하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면 큰일날 테니 여기서 얼른 먹어 버리란다. 그리고 또 하는 소리가,

"너 물은 시원해야 맛있단다."

"난 내 물 있다. 너나 먹어라."

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핸들을 잡던 손으로 그 물통을 도로 어깨 너머로 쓱 밀어 버렸다. 그랬더니 그래도 가는 기색이 없고, 뿐만 아니라 쌔근쌔근하고 심상치 않게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. 이건 또 뭐야 싶어서 그 때에야 비로소 돌아다보니 나는 참으로 놀랐다. 

우리가 이 대회에 출전한지는 근 3년째 되어 오지만 여지껏 하이얀 토도의 얼굴이 이렇게까지 홍당무처럼 새빨개진 법이 없었다. 

게다 눈에 독을 올리고 한참 나를 쏘아보더니 나중에는 눈물까지 어리는 것이 아니냐.

그리고 가방을 다시 집어 들더니 이를 꼭 아물고는 엎어질 듯 자빠질 듯 자전거를 타고 힝하게 달아나는 것이다.

어쩌다 기자가,

"토도 선수는 인기가 많은데 여자친구 없으세요?"하고 물으면,

"좋아하는 사람이 때 되면 생기겠죠."

이렇게 천연덕스리 받는 토도였다. 본시 부끄러움을 타는 놈도 아니거니와 또한 분하다고 눈에 눈물을 보일 얼병이도 아니다.

분하면 차라리 나의 등어리를 손으로 탁 치고 달아날지언정.

그런데 고약한 그 꼴을 하고 가더니 그 뒤로는 나를 보면 잡아먹으려고 기를 북북 쓰는 것이다. 설혹 주는 물통을  안 받아 먹은 것이 실례라 하면, 주면 그냥 주었지'이렇게 시원한 물 느 집엔 없지.'는 다 뭐냐.

그렇잖아도 저희는 하코네 학원이라고 왕자로 불리고 우리는 그보다 한참 아래인 170위 소호쿠 학교이므로 일상 기에 눌려산다. 우리가 이 대회에 처음 참가해서 아무것도 모를 때,우리에게 다가와 설명해주고 도와준 것도 토도네의 호의였다. 그리고 우리 킨조와 타도코로도 코스를 모를때 그들이 우리를 도와줘 꽤 상위의 성적을 거둬 늘상 인품 그런 집은 다시 없으리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하는 것이다. 

그러면서도 토도와 내가 수군수군하고 붙어다니면 소문이 사납다고 주의를 시켜 준것도 또 킨조였다. 

왜냐하면 내가 토도하고 일을 저질렀다가는 토도네가 노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대회에 나가 또다시 낮은 성적을 거둘것이고 그러면 다시는 대회에 출전할수 없는 까닭이었다.

그런데 이 놈은 까닭 없이 기를 복복 쓰며 나를 말려 죽이려고 드는 것이다.

눈물을 흘리고 간 담날 저녁나절이었다. 대회준비를 하려 코스 언덕길을 오르고 내려오려니까, 어디서 메스꺼운 담배 냄새가 난다. 이거 뉘가담배를 피나,하고 토도네 학원 뒤로 돌아오다가 나는 고만 두 눈이 뚱그래졌다. 토도가 제 학원 운동장에 홀로 걸터앉았는데, 아 이게 어느샌가 내 옷을 가져가서는,

"에잇 짜증나는 옷! 타버려라, 타버려라!"

요렇게 암팡스럽게 담배불을 내 옷에 떨어트리는 것이 아닌가. 그것도 내가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옷을 가져가서는 불똥을 틱틱 떨어트리는 것이다.

나는 눈에 쌍심지가 오르고 사지가 부르르 떨렸으나 사방을 한 번 휘돌아보고야 그제서 토도네 학원에 아무도 없음을 알았다. 잡은 자전거 핸들을 꽉 잡고는 토도에게 달려갈 자세를 취하며,

"이 놈이! 내가 가장 아끼는 옷에 무슨 짓 하는거니?"

하고, 소리를 빽 질렀다.

그러나 토도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고, 그대로 의젓이 앉아서 제 옷가지고 하듯이 또 타버려라,타버려라 하고 불똥을 터는 것이다. 이걸 보면 내가 연습 끝내고 내려올 때를 겨냥해 가지고 미리부터 내 옷을 챙겨 가지고 있다가, 네 보란 듯이 내 앞에서 태우는 것임이 확실하다. 

그러나 나는 그렇다고 남의 학원에 뛰어들어가 토도하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, 형편이 썩 불리함을 알았다. 그래 옷에 불똥을 털때마다 자전거 벨을 울려댈 수 밖에 별 도리가 없다. 

왜냐하면 자전거 벨을 울려댈수록 가까이 있는 내가 시끄럽지 토도에게는 별 소리가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. 허나 아무리 생각하여도 나만 밑지는 노릇이다.

"아, 이놈아! 남의 옷 다 태울 셈이냐?"

내가 도끼눈을 뜨고 다시 꽥 호령을 하니까, 그제서야 내가 있는 곳(하코네 학원의 정문)으로 쪼르르 오더니,정문 밖에 섰는 나의 머리를 겨누고 옷을 내팽개친다.

"에이 더럽다! 더럽다!"

"더러운 걸 널더러 입때 까지 끼고 있으랬니? 망할 놈 같으니."

하고, 나도 더럽단 듯이 옷을 땅바닥에 던졌는데 던져놓고 보니 구멍이 숭숭 나 있는 것이 다신 못 입을것 같다.

그리고 나의 등 뒤를 향하여 나에게만 들릴 듯 말 듯한 음성으로,

"이 바보 녀석아!"

그만도 좋으련만.

"얘! 너 댄싱이 기괴하다지?"

"뭐? 내 댄싱이 그래 기괴해?"

할 양으로 열벙거지가 나서 고개를 홱 돌리어 바라봤더니 그 때까지 정문 너머에 있어야 할 토도의 대가리가 어디를 갔는지 보이지가 않는다.

그러나 돌아서서 오자면 아까에 한 욕을 정문 밖으로 또 퍼붓는 것이다. 욕을 이토록 먹어 가면서도 대거리 한 마디 못 하는 걸 생각하니, 페달에 채이어 발목에 멍 드는 것도 모를 만치 분하고 급기야는 두 눈에 눈물까지 불끈 내솟는다.

그러나 토도의 침해는 이것뿐이 아니다. 사람들이 없으면 틈틈이 담배를 물고 와서 내 옆에서 담배를 피워댄다. 제 옷은 잘 타지 않는다는 것을 으레 알기 때문이다. 그래서 툭하면 내 옷이 구멍이 숭숭 나게 하는 것이다. 어떤 때는 내가 나오지 않으니까 킨조를 꼬드겨서는 내 옷을 가져오게 하고 내 옷을 태운다.

이렇게 되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. 하루는 잘 안 탄다는 옷을 사가지고 입어서는 토도에게 다가가니 토도가 또 나를 보고는 담배를 꺼내 뻑뻑 담배를 피워대는것이다. 

내 옷이 잘 타지 않으니 토도는 놀랐는지 당황해서 담뱃재를 자신의 옷에 떨어트리고 자신의 옷에 구멍이 숭하고 난것을 보고 나는 

"꼴 좋다!"

하고, 신이 머리끝까지 뻗치었다.

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넋이 풀리어 기둥같이 묵묵히 서 있게 되었다. 왜냐하면, 토도가 제 옷이 탄 것에 대한 앙갚음으로 내 옷을 뺏고는 담배를 지져대는 것이다. 

그렇게 내 옷은 다신 못 입게 되었고 그걸 보고서 이번에는 토도가 깔깔거리고 되도록 이 쪽에서 많이 들으라고 웃는 것이다.

나는 보다못하여 토도에게 덤벼들어서 내 옷을 도로 학교로 가지고 왔다. 좀 더 좋은걸 샀더라면 좋았을걸,너무 싼 것을 사서 달려든 것이 퍽 후회가 난다.

다시 장에 가서 더 좋은 옷이 없나 갔지만 이미 좋은 옷은 토도가 전부 사서 남은 것이 없었다.

이제 얼마 남은 옷도 없고 돈도 없는데 토도 이 놈이 또 내 옷을 가져가서 태우면 어쩌나 걱정이 되지만 그렇다고 연습을 안 할수도 없는 형편이었다.

그렇게 연습을 끝내고 돌아오려는데 아니나 다를까 토도 이 놈이 또 내 옷을 가져가 언덕 중간에서 태우고 있는것이 아닌가 나는 약이 오를 대로 다 올라서, 두 눈에서 불과 함께 눈물이 퍽 쏟아졌다. 

자전거도 제대로 세워놓지 못하고 내동댕이 치고는 허둥지둥 달려들었다.

토도에게 가까이 가보니 역시나 내 옷이 아닌가 이미 내 옷은 회생불능의 상태로 되어있었다. 옷도 옷이려니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없이 고대로 앉아서 담배를 뻑뻑 피는 그 꼴에 더욱 치가 떨린다. 

동네에서도 소문이 났거니와 나도 한때는 자전거 잘 타고 예쁘장하게 생긴 놈인 줄 알았더니 시방 보니까 그 눈깔이 꼭 여우새끼 같다.

나는 대뜸 달겨들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토도의 옷을 벗겨 뺏고 담배도 뺏어 담배로 지져버렸다. 토도의 옷에는 큰 구멍이 나 다시는 입을 수 없게 되었다.

그리고 나는 멍하니 섰다가 토도가 매섭게 눈을 흡뜨고 닥치는 바람에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.

"이놈아! 너 왜 남의 옷을 태워버리니?"

"그럼 어떠니?"

하고, 일어나다가,

"뭐 이 자식아! 누 집 옷인데?"

하고, 복장을 떼미는 바람에 다시 벌렁 자빠졌다. 그리고 나서 가만히 생각을 하니 분하기도 하고 무안도 스럽고, 또 한편 일을 저질렀으니, 인젠 대회에서 쫓겨나게 될는지 모른다. 나는 비슬비슬 일어나며 소맷자락으로 눈을 가리고는 얼김에 엉,하고 울음을 놓았다. 그러나 토도가 앞으로 다가와서,

"그럼 너 이담부턴 안 그럴 테냐?"

하고 물을 때에야 비로소 살 길을 찾은 듯 싶었다. 나는 눈물을 우선 씻고 뭘 안 그러는지 명색도 모르건만,

"그렇단다!"

하고 무턱대고 대답하였다.

"요담부터 또 그래 봐라, 내 자꾸 못 살게 굴테니."

"그래 그래 이젠 안 그럴거란다."

"옷 탄건 염려마라. 내 안 이를테니."

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.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,한창 자라 푸르게 올라온 잔디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.

잔디 특유의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.

"너, 약속 지켜야 한단다!"

"그래!"

조금 있더니 저 아래서,

"토도! 토도! 이 놈이 연습하랬더니 안 하고 어딜 갔어?"

하고 어딜 갔다 온 듯 싶은 그 후쿠토미가 역정이 대단히 났다.

토도가 겁을 잔뜩 집어먹고 잔디 밑을 살금살금 기어서 언덕 밑으로 내려간 다음, 나는 자전거를 챙기고는 계속 언덕 위로 올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.

[출처] 동백꽃 패러디|작성자 혀느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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